[일요서울 l 이지훈 기자] 국내 일부 항공사들이 승무원 병가 사용 시 ‘연차 차감’과 ‘진단서 제출’을 동시에 요구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개선을 권고했지만, 일부 항공사는 여전히 해당 조건을 유지하고 있어 정부는 항공사 객실 승무원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휴가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선 상황이다.

-병가, 약정휴가로 분류... 연차 차감 가능
-“고강도 근무 환경에서 안전 사고 위험”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승무원들이 병가를 사용하면 연차를 먼저 차감하고, 진단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는 사례가 존재해 승무원들의 건강권 및 노동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지난 11일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객실 승무원이 병가를 쓰려면 진단서를 제출해야 연차 사용이 가능하며, 이 내용이 인사고과 평가에도 반영된다. 에어부산은 당일 병가 사용 시 근무평가에 반영하고, 일부 기간 이상 병가에는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병가를 연차와 연결시키거나 근무평가와 연계하는 관행이 승무원의 건강권과 안전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거리·야간 비행 등 고강도 근무 환경에서 승무원이 병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면 안전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병가는 법정휴가가 아닌 ‘약정휴가’로 분류된다. 사업장별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을 통해 사용 기준을 정할 수 있다. 병가 사용 시 연차를 우선 소진하도록 하는 것은 노사 합의에 따른 운영이 가능하다. 다만 고용부는 병가 사용을 이유로 근무평가나 불이익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연차 사용 시 증빙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관행은 근로기준법상 법적 논란이 될 수 있으나, 약정휴가인 병가 사용에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승무원이 병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스타 항공은 객실 승무원(병가 제도 미도입)의 경우, 스케줄 확정 이후 질병·부상 등으로 직무수행 불가 시, 진단서 등 제출해 연차(신병휴가) 사용이 가능하며, 이는 인사고과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에어부산의 경우 당일 병가 사용에 한해 근무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승무원 현실은 열악... 회사는 제도적 필요 강조

익명을 요청한 승무원 A 씨는 “인력 충원·휴식권 보장이 이뤄지지 않아 노동조건 악화한 상황이며, 업무 강동 또한 높은 편이다”라며 “승무원도 사람인지라 건강관리에 유의한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업무로 인해 매번 비행 때마다 건강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호소했다.

항공사의 경우, 항공안전법 시행규칙 제218조에 따라 최소 탑승 승무원 수가 정해진다. 이에 따라 비행 스케줄 확정 후 연차휴가를 사용한다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다툼 소지가 다분하다.노동부는 이스타 항공, 에어부산 등 자유로운 연차 휴가 사용 여건 조성 및 불합리한 제도를 가진 항공사에 대해 행정지도를 할 예정이다.

이스타항공 측은 고용노동부의 ‘연차 사용 시 진단서 제출’ 개선 권고와 관련해 “객실 승무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빠른 시일 내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승무원의 병가 사용 시 연차 우선 소진과 진단서 제출, 근무평가 반영 등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개별 승무원의 갑작스러운 신병휴가가 비행 근무 투입에 영향을 미쳐 운항 일정과 승객 서비스에 차질을 줄 수 있으므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전 협의 여부에 대해서는 “인사고과 권한은 회사 재량(인사권) 영역에 해당하므로 직원들과 별도 협의 절차는 없었으나, 건강관리를 통해 만근을 유지하는 승무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개선 권고, 현장 반영 여부와 안전 확보 관건

또한, 병가 사용과 관련한 내부 규정·지침은 ‘객실 승무원 인사고과 평가 규정’을 포함해 모든 객실 승무원에게 배포되어 있으며, 언제든 열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스케줄 확정 이후 갑작스러운 신병휴가가 동료 승무원의 휴식권과 승객 서비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연차 사용 및 인사고과 반영 제도를 운영해왔다”며, “현행 신병휴가 관련 인사고과 반영 비중은 극히 적으며, 향후 삭제 등 개선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에어부산은 “병가 사용 시 우선 소진 연차일수 완화, 연차 신청 기한을 40일 전에서 1일 전으로 완화한다”라며 “또한, 객실 승무원 인력 채용(82명 예정) 등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용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승무원의 연차·병가 사용에 불이익이 없도록 점검하고, 안전과 노동권이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개선 권고가 실제 현장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 승무원 권리 보장과 산업 안전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