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사모펀드가 보유한 한진칼 9% 지분이 오는 8월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호반그룹이 해당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10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대신자산운용(4.90%)과 유진자산운용(4.16%)이 운용하는 사모펀드가 총 9.06%의 한진칼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보유 목적과 내용, 지분 변동을 공시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양측은 각각 5% 미만의 지분을 나눠 보유해 이 사실을 공시하지 않았다. 이 지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22년 8월, 3년 만기로 조성된 해당 사모펀드가 오는 8월 만기일 도래와 함께 보유 자산 처분 및 청산절차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조 전 부사장 편에 섰던 반도그룹 보유 지분을 이들 사모펀드가 사들였다. 이들 사모펀드에는 SK에너지, 기아, 효성, 삼구아이앤씨(범 LG그룹)가 출자했다. 재계 주요 기업들이 사실상 조 회장을 지지한 셈이다.

이들은 그간 조 회장의 낮은 지분율(5.78%)을 보완하는 우호 지분으로서의 역할을 이어왔다. 하지만 만기 도래로 지분이 매물로 나올 결우, 더 이상 조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남을 보장이 없다.

재계, ‘타 그룹 경영 개입’ 논란 우려에 발 빼나

특히 호반그룹의 지분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상황은 한층 불안정해졌다. 무엇보다 호반그룹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조 회장 우호 지분으로 남는 것은 부담스럽다. 더이상 명분도 없는 데다 호반그룹과 적대적인 관계 설정은 불필요하다. 

더욱이 앞서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 주총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LG화학, 한국투자증권,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현대차그룹 등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우호 지분들이 중립을 선택하거나 지분을 매도한 사례도 있다.

조 회장 남매 간의 분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개입했던 재계 우호 세력들이 호반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에는 발을 뺄 가능성은 농후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은 이사의 총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규정한 상법 개정 통과를 예고한 상태. 이런 상황에서 회사 자금을 이용한 타 그룹의 경영권 분쟁 개입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호반 "자금 여력 충분" vs 조원태 "우호지분 잡아야"

현재 호반그룹의 자금력을 볼 때, 큼 부담이 없어 보인다. 호반건설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9711억 원, 단기금융상품 3550억 원, 호반 자체의 단기금융상품 2100억 원 등을 감안하면 현 주가 기준 약 8400억 원에 이르는 9% 지분 인수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호반그룹이 이 지분을 확보하면, 총 보유지분율이 27%를 넘어선다. 이는 조원태 회장과 특수 관계인이 보유한 약 20% 지분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즉 호반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조 회장 입장에서는 우호지분 상실이, 단순 손실을 넘어, 경영권 박탈로도 직결되는 리스크가 된다.

한 가지 방어선은 남아있다. 델타항공(14.90%)과 산업은행(10.58%)의 존재다. 조 회장은 이들의 지지를 지속 받아왔다. 지지가 이어한다면, 조 회장의 우호 지분은 46.14%로 과반에 육박하기에, 표 대결에서 여전히 조 회장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다만 델타항공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에서 델타항공이 계속해서 조 회장의 우군으로 남아있을 지가 변수다.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가치는 현 주가 기준 1조4000억 원이 넘는다. 2019~2020년 한진칼에 투자할 당시와 비교하면 상당한 수익률이다. 

델타항공의 지지 절실한 한진, 산업은행도 변수

지난 5월 델타항공의 캐나다 2위 항공사 웨스트젯 지분 인수에 대한항공이 출자하며 동행한 것 역시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유지를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델타항공은 웨스트젯 지분 15%를 3억3000만 달러(약 4555억 원)에, 대한항공은 10%를 2억2000만 달러(약 3035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산업은행 역시 또 다른 변수 가능성이 있다. 앞서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 자금 지원으로 한진칼 지분을 확보했고, 조 회장과 주주 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당시 계약 내용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당분간 조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남아 있겠으나, 경영 성과가 미진할 경우 조 회장의 퇴진이 조건으로 붙어 있다.

즉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실적 방어가 조 회장의 가장 큰 숙제로 남은 가운데, 산업은행의 수장 교체도 중대한 변수로 떠올랐다. 전임 정부에서 한진의 아시아나 인수를 주도했던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자리에서 물러났다.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로, 한진과의 관계 설정에 변화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조 회장에게는 남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만기 도래를 앞둔 사모펀드 지분의 향배 및 재계의 거리두기 움직임, 델타항공 변수 및 산업은행의 태도변화 등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국면에 접어든 한진칼의 경영권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조 회장의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