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한항공 CI)
| 이코노미사이언스 김준수 기자 | 

대한항공 객실승무원들이 인력 감축과 강화된 근무 일정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법적 기준과 국제 권고안을 무시한 채 과도한 업무와 불규칙한 휴식이 반복되며, 노동권 침해는 물론 항공안전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한항공의 객실승무원 수는 2019년 약 7200명에서 최근 65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코로나19 여파 이후 일부 인력을 줄였지만, 전체 노선 운영이 정상화된 지금도 인력은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인력 감축에도 불구하고 업무량은 줄지 않았고, 오히려 근무 강도는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 승무원이 2025년 1월부터 4월까지 받은 실제 휴일은 총 35일. 이는 회사가 보장해야 할 월 평균 10일 기준에서 약 5일이나 부족한 수치다. 피로는 누적되지만 회복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증언이다.

표면적으로는 매달 8일의 휴일이 주어진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확정적으로 쉴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뿐이라는 설명이다. 나머지 휴일은 회사가 임의로 조정 가능하며, 사전 통보 없이 변경되기도 한다.

특히 2박 3일 일정의 비행을 한 차례 소화하면, 이후 남은 한 달의 휴일이 단 4일로 줄어들 수 있다. 이처럼 불규칙하고 조밀한 스케줄 속에서 승무원들은 “달력은 비어 있는데 몸은 쉴 틈이 없다”고 토로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자율적 연차 사용을 보장하고 있지만, 승무원들의 현실은 다르다. 자발적으로 신청한 연차조차 회사가 유급휴무(PDO)로 전환해버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일정은 무시되고, 관리자 동의 없이는 연차 승인조차 어렵다.

7년 차 승무원 박 모 씨는 “내가 쓴 연차인데 정작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마치 회사에 빌려주는 느낌”이라며, 제도적 모순을 지적했다. 2년 차 김 모 승무원은 “가족 생일을 맞아 연차를 냈지만, 회사가 그날을 자체적으로 휴일로 지정해 계획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생리휴가나 가족돌봄휴가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1년차 이 모 승무원은 "아이 돌봄휴가를 냈는데 진급에 불이익이 있을까봐 마음이 무겁다. 쉬라고 있는 제도인데, 쓰면 벌 받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대한항공은 생리휴가나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직원에게 ‘개근상’ 명목으로 진급 점수를 추가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는 휴가 사용을 실질적으로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특히 여성 직원에게 불리한 구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문가들은 해당 제도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소지가 있으며, 명백한 간접차별이라고 지적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차 사용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항공사의 피로도 관리와 예측 가능한 스케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이 같은 국내외 기준을 지키지 않은 채, 연차를 휴일로 대체하고 일정을 사전 통보 없이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객실승무원의 피로는 단지 ‘개인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수백 명의 생명이 오가는 비행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 요소다. 휴식 없는 비행, 예측 불가능한 스케줄, 자율성을 빼앗긴 연차 사용은 결국 작은 실수 하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위험으로 발전한다.

지금 필요한 건 ‘버티라’는 무언의 강요가 아니라, 제도를 바로잡고 책임 있는 변화에 나서는 것이다. 승무원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비로소 승객도 안전하다. 대한항공이 진정한 글로벌 항공사로 거듭나기 위해선, ‘고객 중심 서비스’보다 먼저 ‘직원 중심 문화’를 세우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출처 : 이코노미사이언스(https://www.e-science.co.kr)